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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2024년

중국의 현대사 중 흑역사로 남은 제사해운동(除四害運動)(+관련 책 추천)

by 호나타 2024.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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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마오쩌둥 시절 중국의 대약진 운동의 일부이자

'참새 죽이기'가 핵심이었던 것으로 유명한 제사해운동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마오쩌둥

 

1949년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중국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하게 되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1953년 중공지도부는 

산업 시설을 국유화하고 농업 생산 집산화를 추진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소비에트 방식의 중앙집권적 명령경제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그 해에 제1차 5개년 계획을 수립하게 됩니다.

이후 마오쩌둥은 농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참새들에 적개심을 품게 되고

1955년 11월에 지방대표와의 상의를 거쳐 농업 생산력 증대 관련 "10년 계획안"에 해당하는

"농업 17조"를 채택합니다. 이 중 13조가 "쥐, 파리, 모기, 참새"를 모두 박멸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사해운동 관련 포스터

 

당시 일부 과학자들은 참새 박멸이 생태계의 불균형을 초래할 것이라며 우려했지만,

마오쩌둥은 이들의 주장보다는 농민들의 경험을 우선시했고,

결국 1956년에 "농업 17조"가 "농업 40조"로 증보될 때

27조로 "1956년에 시작해서 5년, 7년, 12년 내에 일체의 가능한 지역에서 쥐, 파리, 모기, 참새를 모두 제거"

하라는 내용이 실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1955년 겨울부터 참새 박멸 작전이 시행됩니다.

하지만, 일부 생물학자들은

"참새가 곡물을 먹는 것은 맞지만, 번식하고 새끼를 키우는 시기에는 해충을 잡아먹는다"며,

여전히 반대 의견을 내보냈고, 결국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한 중공지도부는

도시나 임지에서는 참새를 소탕할 필요가 없다는 노선을 취하는 것으로 방향을 수정합니다.

그렇게 '제 1차 참새와의 전쟁'은 끝나게 됩니다.

 

하지만, 1958년부터 마오쩌둥의 주도로 대약진 운동이 시작되면서 '제 2차 참새 박멸 작전'이 시행됩니다.

기존의 수정된 노선은 폐기되었고,

중공지도부의 지시에 따라서 지방정부들은 3-8년 이내에(지방마다 달랐음)

참새 등의 사해(四害)를 박멸하는 것을 목표로 정하게 됩니다.

결국 1958년 봄부터 다시 참새 박멸이 활발해집니다.

 

 

당시 중공지도부는 "5000만 마리의 참새를 박멸하면 300만 명분의 양식을 보호할 수 있다!"

라며 신문, 라디오, 심지어 거리의 확성기까지 동원하며 적극적으로 참새 박멸에 임했습니다.

그리하여 1958년 3월 20일부터 22일까지, 중국 전역에서 사망한 참새만 1500만 마리였죠.

 

소수의 권위 있는 생물학자들은 참새 박멸 운동에 강렬하게 반대하며

참새 박멸 운동에 광기에 맞서 싸우게 되는데요.

 

 

이들이 대단한 이유는, 당시 중국은 반우파투쟁이라는 사건으로 인해

과학자들을 포함한 중국 인민들이 정부의 시책을 비판하거나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참새 박멸을 비판하는 연구 보고서까지 내면서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이 보고서의 영향으로 마오쩌둥은 결국 1960년에 사해 중 참새를 빼고 대신 거기에 빈대를 넣게 됩니다.

그렇게 참새 박멸의 광기는 끝납니다.

 

 

하지만, 이미 중국 전역에 20억 마리에 가까운 참새들이 죽은 뒤였고,

결국 일부 생물학자들이 우려한 '(참새가 사라지고) 해충들의 낙원이 된 중국'은

현실이 되어 곡물 생산량이 현저히 떨어지고 이는 대기근으로 이어져서 최대 4500만 명이 아사하게 됩니다.

 

 

오늘 참고한 책은 <슬픈 중국:인민민주독재 1948-1964>입니다.

슬픈 중국 3부작의 첫 번째 시리즈로,

중국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여 중국 대륙을 차지한 후,

중국인들이 국가의 농노가 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 책입니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으셔도 좋고, 눈길을 끄는 장부터 읽는 것도 좋다고 저자가 말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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